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피터 싱어 [동물해방] 제5장, 6장 요약

by 마상봉한식 2023. 3. 19.

제5장 인간의 지배 

- 종차별주의의 간략한 역사

 

  • 동물에 대한 횡포는 단순한 악행이 아니라 지배적 위치를 차지한 동물로서의 우리가 가진 이데올로기의 표현. 오늘날 수용할 수 없는 종교적, 도덕적, 형이상학적인 전제에 의거하기 때문에 이전 세대들의 동물에 대한 태도는 이제 더 이상 설득력을 발휘할 수 없음. 
  • 서구의 사상이 200~300년 전부터 오늘까지 인간 사회 대부분의 지배적 사유 방식이 되었기 때문에 서구 사상가들에 의한 동물에 대한 태도 형성과 옹호의 역사를 살펴볼 필요. 이 장의 전략은 그러한 태도의 역사적 기원을 폭로함으로써 이데올로기에 대한 완고한 환상을 우회적으로 폭로하고 깨는 것. (2~3장은 직접적 공격) 

기독교 이전의 사유 방식

  • 히브리인들은 신이 인간에게 동물에 대한 (자비와 동물을 돌봐야 하는 책무도 포함된) 지배를 허용했다고 여김. 채식주의자인 그리스의 피타고라스는 죽은 사람의 영혼은 동물로 건너간다고 주장. 아리스토텔레스는 동물들은 인간의 목적을 위해 존재하고 자연은 더 많은 이성 능력을 갖춘 존재들을 위해 낮은 이성 능력이 존재하는 계층구조라고 주장. 아리스토텔레스 철학은 후대 서구 전통의 일부로 자리 잡음.

기독교의 사유 방식

  • 기독교의 사유 방식은 유대주의와 그리스적 사유 방식의 결합. 로마제국은 정복 전쟁으로 성장한 국가로 전투적 군사 문화가 사회 기풍.  인간과 동물을 살육하는 투기회는 시민의 여흥이자 통치술로 수 세기 동안 지속됨.
  • 유일무이한 인간 종의 차별성은 유대교에서 기원하여 기독교에서 더욱 강조됨. 모든 인간의 생명은 신성하다는 (단 오직 인간의 생명만이) 기독교 교의의 진보성은 로마인의 도덕적 사유를 크게 확장했으나 인간 아닌 종의 낮은 지위를 더욱 공고하게 저하시킴. 로마제국 시대와 마찬가지로 기독교 시대에도 인간 아닌 존재들은 관심 밖의 영역으로 방치. 
  • 기독교인들 중에서도 동물에 대한 관심을 표명한 사람들이 있었으나 종차별주의적 편견을 담은 기독교 사상의 흐름을 바꾸지 못함. 동물들의 고통 감수 능력을 인지 했음에도 동물들에 대한 죄를 부정한 아퀴나스의 입장이 후대에까지 지속. 예외적인 인물들(성 프란체스코)도 종차별주의를 넘어서지 못함.

 르네상스 시대

  • 중세적 우주관을 붕괴시키고 탄생한 인본주의는 ‘하위 동물’의 유한한 본성과 대비하여 인간의 유일무이함, 자유의지, 존엄성을 강조. 이 시기는 현대 사상의 출발을 이뤘으나 동물에 대한 태도에 관한 한 이전의 사유 방식은 불변.
  • 동물 학대를 반대하는 진정한 인물들 등장. 채식주의자로 놀림감이 된 레오나르도 다빈치, 인간은 무한 앞에서 개미에 지나지 않는다는 이단적 발언을 고집하다 화형당한 조르다노 브루노, [학대에 관하여]를 통해 동물 학대는 그 자체로 나쁘다고 주장한  미셸 드 몽테뉴.
  • 우주의 중심이 인간이라는 구태의연한 개념은 점차 흔들리기 시작했으나 그때까지도 최악의 바닥에는 도달하지 않음. 동물의 입장에서 가장 고통스런 기독교 교리의 산물인 데카르트 철학이 등장. 데카르트 왈, 세상은 정신 또는 영혼이라는 실체와 물질적 또는 육체적 본성을 갖는 실체 두 가지 실체로 구성되고 오직 인간만이 영원불멸의 영혼을 소유. 영혼이 없는 동물은 기계이자 자동인형. 동물이 표현하는 고통은 실제로 느끼는 것이 아니라 시계처럼 작동되는 모습. 정의로운 신이 동물을 고통 받게 한 이유에 대한 까다로운 신학적 난제 해소. 데카르트 사상은 당시 유행하기 시작한 동물 실험에 편의성 제공. 

 계몽 시대와 그 이후

  • 동물 실험이라는 새로운 유행은 동물에 대한 태도 변화에 영향을 끼침. 실험은 인간과 동물의 생리구조가 유사하다는 사실을 보여주었기 때문. 근본적인 변화는 없었지만 동물에 대한 태도 개선을 이루기 위한 다양한 영향력이 결합됨. 동물도 고통을 느끼며 일정한 배려를 받을 자격이 있다는 인식 등장. 자비를 증진하면서 잔혹성을 줄이려는 경향 확산.
  • 18세기는 인간이 ‘자연’을 재발견한 시대. 우리 스스로를 자연의 일부로 인식하기 시작했으나 인간에게 특별한 지위를 부여한 종교적 관념은 그대로 유지되어 인간에게는 동물가족에 대한 자애로운 아버지의 역할과 그들을 제대로 관리하는 책임이 있는 것으로 여기기 시작함.
  • 우여곡절 끝에, 동물 자체를 위해서가 아니라 소유주의 이익을 보장하는 형태로 1822년 사상 최초로 동물 학대를 금지한 법 등장. 법의 실효적 집행을 위해 최초의 동물 복리 단체 탄생.
  • 다윈이 인간은 신이 특별하게 만든 피조물이 아니라 다른 동물에서 유래된 존재이고 인간과 동물의 차이는 크지 않다고 주장하면서 인간과 동물간의 관계에 대한 이해 방식의 혁명이 시작됨. 더 나아가 인간이 가진 도덕적 감정조차 동물의 사회적 본능에서 유래되었다고 주장. 다윈의 이론은 지적인 대변동을 촉발했으나 동물에 대한 인간의 폭정은 여전히 지속. 오히려 역사상 다른 어떤 시기보다도 더 많은 동물에게 고통을 가하고 있음. 
  • 극히 드문 경우를 제외하고 동물의 권리에 대한 논의는 육식의 문제 앞에서 멈춤. 벤담과 더불어 시작된 시기는 결국 변명의 시기로 규정할 수 있음. 오늘날에도 여전히 마주치는 변명들. 1) 신을 통한 변명. “... 신이 성서를 통해 동물을 먹을 수 있도록 허락했다…” 2) 자연에 호소. “... 자연적 질서의 첫 번째 원리는 더 약한 것을 잡아먹으라는 것이었다” 3) 신비주의적 변명. 4) 지리학적 이유(쇼펜하우어) “동물을 먹지 않았으면 우리는 북부 지역에 인류 종을 찾아볼 수 없었을 것” 동물들에게 권리를 확장할 필요성을 강하게 주장한 벤담마저도 “... 자연의 불가피한 도정에서 그들을 기다리고 있는 것보다 … 덜 고통스럽게”
  • 이제 동물은 더 이상 도덕의 영역 밖에 머물러 있을 수 없게 되었으나 그들이 위치하는 곳은 여전히 영역 가장자리의 특별한 구역. 그들의 이익은 인간의 이익과 충돌하지 않을 때만 고려의 대상이 됨.

 

제6장 오늘날의 종차별주의

- 동물해방에 대한 옹호, 합리화, 그리고 그에 대한 반론과 이를 극복하는 데서 이루어진 발전

 

  • 동물에 대한 근본적인 태도를 고수한 채 선택적 박애심으로 이루어진 개선은 언제나 침식당할 우려가 있음. 동물에 대한 착취를 없애기 위한 굳건한 기초를 마련하려면 이천년 이상 지속되어 온 동물에 대한 서구의 사유를 근본적으로 타파해야 함.
  • 우리의 동물에 대한 태도는 아주 어릴 때 부터 식육 습관과 더불어 형성된 편견으로 형성. 아이들은 자연스럽게 동물을 사랑함. 이런 두 가지 상반된 태도가 갈등하지 않고 공존. 동물이 인간의 적으로 묘사되는 동화를 들으며 성장한 아이들에게는 배우는 것과 먹는 것에 모순이 없었음. 교육, 대중매체를 통한 둘러대기 전략은 현대 축산의 본질을 고의적으로 은폐하며 먹히기 위해 존재하는 가축도 행복하게 살다가 생을 마감한다고 왜곡함. 동물들이 처한 끔찍한 환경에 대한 무지를 조장. 동물 실험에서 자행되는 일도 철저히 은폐. 무지에 대한 종차별주의자들의 변명이 오랫동안 효과를 발휘할 수 있었던 것은 단지 사람들이 진실을 알기를 원하지 않았기 때문. 양심의 부담을 회피하기 위해 무지를 선택.
  • 동물 복리 단체가 가장 중요한 형태의 잔혹한 처우에 반대하여 행동하지 못하는 역사적인 이유 단체가 성장하면서 체제의 일부가 되면서 급진성 상실. 사소한 개선을 위해 근본 원칙을 수 없이 양보. 대부분의 개선은 별 효과를 발휘하지 못했고 오히려 더 이상의 개선이 필요하지 않다고 대중들을 안심시키는 역효과가 발생. 또 다른 문제는 이런 조직들이 자선단체로 등록되면서 반려동물, 애완동물의 보호에 집중하는 주류적 태도가 형성되고 자선단체 지위를 위협하는 정치 행동을 회피. 
  • 20세기 마지막 10년은 새롭고 급진적인 동물해방 단체의 등장으로 집약적 방식의 가축 생산, 동물 실험, 서커스, 사냥 등에서 체계적으로 자행되는  잔혹한 처우 방식에 관심이 고조. 기존 단체들 역시 더욱 강경한 입장과 대항이 형성됨.

 인간이 우선이라는 가정

  • 대중의 관심 환기에 가장 어려운 것은 ‘인간 우선’이라는 가정으로 그 자체로 종차별주의적 특징을 가짐. 동물이 아무리 고통을 받는다고 해도 인간의 고통에 비해 중요하지 않다고 전제해야 가능. 동물에 대해 무지한 사람이 어떻게 인간의 문제에 비해 동물의 고통 문제가 중요하지 않다고 단언할 수 있을까? 또한 동물의 문제는 인간의 문제와 비교할 만큼 중대한 도덕적, 정치적 이슈가 될 수 없다는 가정. 기아와 빈곤, 인종차별, 전쟁 등 우리가 해결해야 할 여러 주요 문제들 중 어느 한 문제를 가장 중요하다고 단언할 수 없음. 종차별주의적 편견에서 벗어나면 인간이 인간 아닌 존재들에 대한 억압도 다른 문제 만큼 중요하다는 사실을 알 수 있을 것. 당면한 난제들에 비해 동물의 고통을 줄이는 일은 일단 인간이 착수하기만 하면 비교적 해결이 용이.
  •  ‘인간 우선’이라는 생각은 양립 불가능한 선택지들 사이의 불가피한 선택이 아니라 아무것도 하지 않음을 변명하기 위해 사용됨. 유한한 자원을 어떤 목적을 이루기 위해 집중을 하면 다른 목적에 활용할 자원이 줄어들게 되지만 축산 산업에서 자행되는 학대를 막기 위한 노력에는 그러한 경우가 발생되지 않음. 역사적으로 노예제도 반대 투쟁, 여성해방 운동, 아동 학대 방지, 장시간 노동을 막기 위한 공장법 제정 등 동물 복리 운동의 지도자들은 동물에 대해 전혀 관심이 없는 사람들보다 인간에 대해 더 큰 관심을 가지고 헌신함. 오히려 인간의 복리 환경과 환경 보존을 위해서는 채식주의자가 되어야 할 것. 비채식주의자들이 무자비한 축산 동물의 착취를 방관하면서  ‘인간 우선’을 주장하는 것은 모순.
  • 인간 아닌 동물들의 본질에 대한 우리의 생각, 그 생각이 시사하는 바에 관한 잘못된 추론 또한 종차별주의를 버리지 못한 원인. 인간은 동물과 달리 생존을 위해서가 아니라 호기심, 탐미 욕구에 의해 다른 종을 죽이고, 탐욕과 권세때문에 자기 종을 살해함.  오로지 인간 종만이 죽이기 전에 괴롭히고 고문을 함. 동물 학대자들은 사람들의 동물들의 본성에 대한 무지에 편승하여 동물은 인간이 아니다라는 말로 비판을 회피. 감상적인 의인화가 갖는 위험은 동물들을 우리 마음대로 주조할 수 있는 점토 덩어리라는 편의적이고 이기적인 생각이 갖는 위험보다 심각하지 않음.
  • 자신들이 동물들보다 우월함을 존재임을 주장하면서도, 채식주의를 반대하는 논거를 사용할 때나 막상 자신들의 식생활 기호를 정당화 할 때는 동물이 먹기 위해 다른 동물을 먹는다는 동물의 본능을 근거로 주장. 도덕적 선택을 할 수 있는 능력이 있음에도 도덕적 선택을 할 수 있는 능력이 없는 존재들을 모방함으로써 책임을 회피할 수 없음.
  • 윤리적 논의에서는  ‘자연’에 대한 호소를 경계해야. 우리가 언제 자연을 따를지를 결정할 때는 자신의 이성적 판단이 필요. 인간의 역사에서 전쟁은 ‘자연스러운’ 것이지만 자연에 따른다고 해서 전쟁을 용인할 필요는 없음. 우리에게는 최선의 선택이 무엇인가를 사고할 능력이 있으며 우리는 그러한 능력을 사용해야 함.
  • 육식동물의 존재가 제기하는 동물해방의 윤리적 문제에 대한 간단명료한 답은 다른 종에 대한 ‘지배권’ 있다는 생각을 포기하는 것. “전제 군주의 역할을 포기 했다면 우리는 신의 역할을 맡아서도 안되는 것이다” 많은 사례에서 생태적 개입은 득보다 실이 많음. 동물을 불필요하게 살해하거나 학대하지 않는다면 그것으로 우리의 할 일을 충분히 하는 것. 
  • 축산 환경이 추위, 기아, 포식자들에게 노출되어 있는 야생 환경보다 나쁘지 않다는 주장은 그 자체로도 사실이 아니나 두 조건을 비교하며 공장식 축산을 옹호하는 것은 부적절. 양자 선택의 문제가 아님. 공장식 농장을 폐지한다는 것이 곧 가축을 야생화 하는 것을 의미하지 않음. 우리가 선택해야 하는 것은 공장식 농장에서 살도록 운명 지어졌으며 식용으로 도축되는 동물을 과연 태어나도록 해야 하는지의 여부.

 [요약이 불가능한 부분 384p ~388p]

  • “고기를 먹고자 하는 욕구가 아니었다면 그러한 가축들은 아예 이 세상에 태어나보지도 못했을 것이기 때문이다”라는 주장에 대한 초판에서의 저자의 입장은  “어떤 존재를 태어나게 한다는 것은 그 존재에게 이득을 주는 것이라고 생각해야 하기 때문이다. 그리고 이와 같은 입장을 견지하려면 우리는 존재하지 않는 존재에게 이들을 줄 수 있다고 믿어야 하는데 … 터무니 없었다” 그렇지만 지금은 확신할 수 없음. (저자가 언급했던 철학적 문제 중 유일하게 생각을 바꾼 것) 비참한 삶이 확실한 유전적 결함을 가진 태아의 출생 여부를 언급. 
  • ‘죽이는 것이 잘못인가?” 미래에 대한 욕구를 가질 능력이 없는 존재를 고찰할 때 드러나는 난제. 죽임을 당한 동물의 손실이 동일한 정도로 즐거운 삶을 영위할 새로운 동물의 탄생으로 보상되지 않는 이유가 무엇일까? 
  •  이하 ???

(이 부분은 이해가 안되서 요약을 할 수 없었다. 입장 변화로 자신감을 상실했을까? 횡설수설한 느낌. 모임에서의 의견은, 1) 피터 싱어는 자신의 논거에서 형이상학적 존재론을 최대한 배제했으나 사유를 계속 밀고 가다보니 결국 존재론 문제에 봉착하며 혼란을 느낀 것. 2) 주장이 모호한 것이 아니라 번역의 문제 같음. 입장은 분명하고 초판 이후 생각의 변화를 표현. 아직 결론에 이르지 못한 문제를 솔직하게 고백했다.)

 

종차별주의를 정당화하기 위한 구실

  • 종차별주의을 공격하는 사람들 자신이 종자별주의적 관행에 참여하고 있는 경우 일관성 없는 언행에 대한 비판이 동물에 대한 잔혹한 행동을 논리적으로 정당화 시켜주지는 않으나 자신들이 공언한 신념을 타인에게 설득하기 어려움. 모든 동물의 이익을 동등하게 고려할하는 윤리 원리를 생활에 적용함으로써 비판을 극복할 수 있음. 가장 중요한 단계는 채식주의. 가죽, 모피 등 동물을 죽이거나 고통을 가해 만들어진 제품은 사용하지 말아야. 예전에는 이러한 행위가 진정한 희생을 의미했으나 오늘날에는 손쉽게 다른 재료로 만든 대체품으로 소비 가능. 구매 습관을 변경하는 것은 몸을 움츠리는 것이 아니라 동물 착취에 대한 경제적 지원을 감축 시키고 타인에게 동참을 요구하는 행동.
  • 대다수 사람들이 공장식 축산에 대한 거부 운동에 참여하기 전까지는 단지 동물 제품의 수요 창출에 기여하지 않는 것만으로도 일관성을 갖추었다고 할 수 있음. 우리가 윤리적, 정치적 운동보다는 종교적인 식사법에나 잘 어울릴 것 같은 일종의 순수성을 확보하기 위해 분투하기 보다는 이상과 상식을 조화시키고자 할 경우 타인을 설득하기가 훨씬 용이.
  • 인간과 인간의 생계와 건강에 해를 주는 인간 아닌 존재들 간의 이익 충돌 문제에 대해 이익 평등 고려의 원리에 따라 어떻게 대처해야 할까?  동물들의 이익을 최대한 존중하면서 현재의 해결책보다 훨씬 적은 고통을 야기하는 해결책을 마련하는 것은 우리의 기술 능력으로 가능. 우리의 이익과 양립하기 어려운 동물의 개체수를 조절하는 인도적 방법을 개발하게 될 것.

 

식물도 고통을 느끼는가

  • “식물이 고통을 느끼지 못한다는 것을 어떻게 아는가?”는 말은 이익 동등의 원리를 위배하지 않고서는 생존이 불가능하다고 주장하며 식물과 동물을 모두 먹어도 좋다는 결론을 도출하기 위한 공격. 식물이 쾌락과 고통을 느낄 수 있다는 증거는 없음. 그런 증거가 발견되었다고 하더라도 지금까지의 습관을 정당화 할 수 없음. 우리가 고통과 굶주림을 피할 수 없다면 상대적으로 적은 악을 선택해야 할 것. 식물이 동물과 같은 수준의 고통을 느낄 수 있다고 해도 동일한 결론에 도달. 육식이 채식에 비해 열 배의 식물들을 간접적으로 파괴하고 있기때문.

 

종차별주의와 철학

  • 철학의 주요 임무는 우리 대부분이 당연하게 생각하고 있는 바를 초지일관 비판적이고도 조심스럽게 검토하는 것. 하지만 편견에 구속된 선행 이데올로기를 그대로 답습하거나 세련된 형태로 옹호한 경우가 많았음. 인간과 다른 종과의 관계에 대한 선입견에 도전하지 않으면서 편리한 종차별주의 습관을 공고히 하는 경향이 있었음.
  • 인간 아닌 동물들의 지위에 대한 질문을 제기하지 않으면서 인간 평등의 문제를 논의하기가 힘들다는 사실을 인식하기 시작함. 인간이 평등하다는 이념을 지지하려면 인간이 최소한의 공통문모로 근원에 뿌리박힌 특징을 공유하여야 하나 이런 특징은 인간만이 갖는 특징이 아님. 특징의 문제가 아니라 이익에 대한 동등한 고려라는 원리에 기초하면 동등한 고려의 대상 영역에서 동물을 배제하는 근거를 찾기는 더욱 어려움. 
  • 평등주의 철학자들은 추론을 통해 자연스럽게 도달하는 결론을 회피하면서 인간의 평등과 동물의 불평등에 대한 자신들의 신념을 조화시키려고 노력했으나 도덕적 간극을 정당화할 근거를 찾는 것에 실패. 도덕적 고려의 준거가 되는 특징(인간 아닌 동물들에게는 없는)을 갖추지 못한 인간의 존재로 인해 야기되는 문제를 정면으로 마주한다면 동물들의 지위를 근본적으로 개선하지 않고서는 인간 평등을 고수하는 것은 불가능함. 동물해방 운동은 강단 철학권 내의 토론과 연결되어 성립.  철학계에서는 동물의 지위를 검토하면서 기존의 도그마를 극복하려는 주목할만한 변화가 일어남.

 

결론

  • 이 책의 요지는 단순히 한 개체가 어떤 종에 속해 있다는 이유로 그 존재를 차별하는 것은 편견이라는 것. 종차별에 반대하는 입장을 감정이나 정서에 호소하기 보다는 이성에 호소하여 논증하였음. 이성이 더 보편적이며 호소력 또한 더욱 강력. 이 책의 주요 논의를 반박하지 못했다면, 도덕에 대해 진지하게 생각한다면 종차별주의의 잘못을 인정하고  반대해야 할 것.
  • 동물 학대가 인간 학대로 이어질 수 있다는 주장이 동물에게 친절해야하는 참된 이유라면 이는 전적으로 종차별주의의 입장임. 인간에게 유익한 결과를 가져오는지의 여부에 따라 동물을 배려할지의 여부가 결정되어서는 안됨. 
  • 채식이 육식보다 건강에 유익하다고 주장하지 않았음. 동물해방의 관점에서 동물들에게 고통을 안겨 주지 않고 살아갈 수 있다면 우리는 마땅히 그러한 삶의 방식을 취해야 할 것.
  • 오래된 편견과 강력한 기득권, 체질화된 습관을 극복하고 마침내 동물해방 운동은 성공을 거둘 수 있을까? 점차 동물해방을 지지하는 사람이 늘어났고 대중의 시각도 개선되면서 제 도적 장치도 마련되고 있음. 동물해방 운동의 전망이 밝아지고 지지를 획득해 감에 따라 다양한 연대의 힘이 모임.
  • 동물해방 운동은 다른 어떤 해방 운동보다도 훨씬 큰 이타적 태도를 요구. 동물들은 스스로 해방을 요구할 능력이 없음. 또한 그들은 자신들의 조건에 항의하는 투표, 시위, 거부 운동을 벌일 수 없음. 인간에게는 이 행성이 더 이상 생명체가 살아갈 수 없는 장소가 될때까지 다른 종들을 억압할 수 있는 힘이 있음.
  • 도덕성이 자기 이익과 부딪칠 경우에는 아무런 역할도 하지못한다는 사실을 입증하면서 우리의 횡포가 계속될 것인가? 아니면 우리가 누리는 지위가 도덕적으로 옹호될 수 없음을 인정하여 우리의 지배하에 있는 생물 종들에 대한 무자비한 착취를 종식시킴으로써 진정한 이타성을 발휘할 수 있는 능력이 우리에게 있음을 입증할 것인가?